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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선묵혜자스님과 마음으로 찾아가는 108산사순례기도회는 2015년 1월 8일부터 10일까지 충주 월악산 미륵 세계사에서 제100차 순례법회를 봉행한다. > 한 달에 한 번 전국 사찰를 찾아 순례를 떠나는 108산사순례기도회는 충주 월악산 세계사에서 다문화가정108인연맺기, 선묵108효행상, 선묵108장학금, 선묵108보시금, 직거래장터 등을 전달하는 것을 비롯해 다양한 자비나눔 실천을 하며 순례법회를 봉행할 예정이다. > > 미륵 세계사는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조부인 작제건(作帝建)이 창건하였다고도 하고,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麻衣太子)가 금강산으로 들어가던 중 이곳에 절을 창건하여 머물다가 갔다고도 전하나, 확실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주변에 산재한 덕주사(德周寺)ㆍ덕주골 등 마의태자 일행과 관련된 명칭으로 보아, 이 절의 창건이 마의태자와 관련된 것이 분명하다. > > 보물 제96호인 괴산미륵리석불입상과 보물 제95호인 괴산미륵리오층석탑은 마의태자가 일행과 함께 건립한 것이라 전한다. 현재 사지(寺址)에 산재되어 있는 석불ㆍ석탑ㆍ석등ㆍ귀부(龜趺) 등의 문화재로 보아 당시에는 규모가 매우 큰 가람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 1192년(명종 22) 원명(元明) 등이 금당(金堂)을 중수하였고, 1254년(고종 41) 몽고병란으로 소실된 뒤 고려 말 조선 초에 중건하였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뒤 18세기경에 중건하였으나, 1936년의 폭우로 산사태를 만나 사찰이 매몰됨에 따라 폐사가 되었다가, 6ㆍ25 이후에 조그만 요사만을 지어 세계사라고 불렀다. > > 최근까지 이 절의 원래 이름이 알려지지 않다가 1977년 청주대학교의 발굴조사팀에 의하여 미륵당초(彌勒堂草)라고 새긴 명문와(銘文瓦)가 출토되어 미륵사지임이 확인되었고, 현재 중원문화권의 개발에 힘입어 복원이 계속되고 있다. > > 이곳에는 보물을 제외하고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9호인 중원미륵리석등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3호인 중원미륵리삼층석탑, 사각연화석등ㆍ귀부ㆍ당간지주ㆍ공깃돌 등이 있다. > > 석등은 고려시대에 제작된 높이 2.3m의 화강암재이며, 귀부는 길이 6.4m, 넓이 1.5m, 높이 0.8m의 거대한 돌거북으로 등 중앙 부분에 비를 세웠던 홈이 패어 있고, 얼굴을 높이 쳐든 모습이 생동감이 넘치는 동양최대의 귀부이다. 바위 위에 올려진 지름 1.5m의 공깃돌은 온달장군이 국경 경비 중 휴식을 취하면서 부하들과 더불어 놀이를 할 때 사용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 > 이밖에도 발굴조사 때에 범자(梵字)가 새겨진 기왓장을 비롯한 많은 고려 초기의 수막새ㆍ암막새ㆍ명문와ㆍ치미(鴟尾), 구마도(驅馬圖)와 맹호도(猛虎圖)가 그려진 기와, 사자석상ㆍ용머릿돌ㆍ금동귀면ㆍ청동신장ㆍ금동소탑옥개 등이 발굴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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