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기본 예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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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도안사
작성일 : 2014-05-08 조회 : 2,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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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에서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가족 구성원 모두가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탐진치)을 버리고, 살생과 도둑질과 음란한 행위와 거짓말을 삼가야 합니다. 신뢰가 생명인 피를 나눈 가족간에 서로 믿을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가정의 행복은 있을 수 없는 것이겠지요.
특히 가족 중 누구라도 재산을 함부로 탕진하는 행위, 즉 술에 취하고, 도박을 즐기고, 방탕하고, 향락에 빠지고, 나쁜 벗과 어울리고, 게으름에 젖는 행동을 보이면 안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재산을 탕진하는 사례로 위의 여섯 가지를 들었습니다. 가족 중 누구든 이러한 유혹에 빠지면 온 가족의 행복과 미래에 검은 구름을 드리우게 하는 나쁜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러면 먼저 부모와 자식간의 도(道)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할까요. 부처님은 《육방예경》이라는 경전에서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도리’를 다음의 다섯 가지로 설명하고 계십니다.
첫째, 부모를 잘 받들어서 아쉬움이 없이 하고,
둘째, 무슨 일이든지 하기 전에 먼저 부모님께 알려 드리고,
셋째, 부모가 하는 일에 거스르지 말고, 부모의 당부를 어기지 않으며,
넷째, 부모의 은혜를 늘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다섯째, 부모의 바른 가업을 계승하여 가문을 빛내는 것입니다.
너무나 쉽고 당연한 가르침이어서 따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연로한 부모님과 늘 가까이 대화를 나누어 소외감을 주지 않고 가족의 한 구성원이라는 소속감을 주고, 마음을 상하게 하는 행동을 삼가며 사회에 나아가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입신양명을 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얼핏보면 쉽게쉽게 말씀하신 것 같지만 반드시 지켜야할 필수적인 내용들로 되어 있지요. 비록 이 가르침이 쉽다고 해도 제대로 실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또 이 경전에서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법’을 역시 다섯 가지로 제시하고 계십니다.
첫째, 자식을 사랑으로 타일러서 나쁜 일을 멀리 하게 하고 착한 일을 가르치며,
둘째, 자식의 인격 완성을 위하여 교육을 시키고,
셋째, 성현의 법과 계를 지니게 하며,
넷째, 장성하면 결혼을 시켜서 한 가정을 이루게 하고,
다섯째, 가업을 잇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타계한 어느 재벌이 자식교육만큼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탄식을 했다는 이야기가 한동안 회자된 적이 있습니다. 자식교육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자식을 반드시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할 것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자식의 인격완성을 위해 교육을 시킴은 물론이고 성현의 법과 계를 지니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특히 성현의 법과 계를 지니게 하라는 말씀은 적지 않은 가정에서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지요. 불자가정이라면 적어도 그 가족 구성원만큼은 불제자가 될 수 있도록 신경을 기울여야 합니다.
백천만겁이 지나도 만나기 어렵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혈육인 자식에게조차 권하고 가르치지 못한다면 문제가 있겠지요. 이를 위해서는 먼저 부모가 불교공부를 제대로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막연히 절에 가서 기도하면 부처님께서 소원을 들어주거나 복을 주신다는 원시적 신앙형태로는 자식에게 불교의 진면목을 알려줄 수 없다는 말입니다.
부처님은 자식이 장성하면 결혼을 시켜 가정을 이루게 하는 것도 부모의 책임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요즈음 결혼은 부모의 의사보다는 자식의 뜻대로 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럴수록 더 부모님이 신경을 써야 할 것입니다.
부모는 부모의 도리를, 자식은 자식의 도리를 다할 때 그 가정은 편안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막연히 어떻게 잘 해야 하는가를 모르고서는 도리를 다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행히 우리 불자들은 부처님께서 자상하게 일러주신 도리를 경전을 통해 알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요. 이 도리를 잘 인지해서 행복한 가정을 일구는데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 세수·목욕할 때
“목욕할 때는 먼저 더운물로 얼굴을 씻은 다음 위에서부터 아래로 천천히 씻어야 하며, 조급하게 덤벼 물이 곁에 있는 사람에게 뿌려지게 하면 안 된다. 욕실에서 목욕을 하다가 오줌을 누면 안 되고 남과 이야기하거나 웃으면 못쓴다.
으슥한 데를 씻으면 못쓴다. 부스럼이나 옴이 있는 이는 나중에 목욕하여야 하며, 보기 흉한 헌 데가 있는 사람은 더욱 피하여서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해야 한다. 제멋대로 오래 씻어서 뒷사람에게 방해가 되면 안된다.”
율장에는 몸을 씻을 때의 예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 하나가 참으로 적절한 지적이지요. 이런 예절은 혼자 욕실에서 목욕을 할 때도 지켜야 하지만 특히 대중탕에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예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가르침은 기본적인 예절도 담겨 있지만 물을 아껴 쓰라는 절약의 정신, 오배수에 배뇨를 함으로써 정화조를 거쳐야할 배설물이 직접 오배수관으로 나아가게 돼 결과적으로 환경을 오염시키는 경우를 경계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뿐입니까. 피부병이 있는 사람과 목욕을 하게 될 경우에 빚어질 여러 가지 질병예방의 지혜도 담겨 있는 것이지요. 목욕의 과정 하나 하나를 모두 수행의 일환으로 여기고 있기에 가능한 가르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목욕하는데 있어, 특히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목욕을 하는 경우에 지켜야 할 예절 중에 몸에 흉한 상처나 문신이 있는 경우에는 애써 눈에 띄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도 몸에 있는 때를 씻어내며 마음의 때도 벗어내려는 마음을 내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각별히 주문하신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 여기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세수를 할 때 큰소리로 코를 풀거나 침을 뱉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특히 절에서 세수나 목욕을 하게 될 경우에 탑이나 법당 주위에서는 세수는 물론 양치질도 삼가야 합니다. 몸을 잘 씻고 정결히 하는 것, 그것은 마음 닦는 공부의 시작입니다.
- 걸음걸이
자, 이번에는 걸음걸이 예절에 대해 알아보기로 합니다. 얼마 전에 입적하신 일타 큰스님께서는 《불자의 기본예절》이란 책에서 ‘걸음걸이에도 도(道)가 있다’고 강조할 정도로 걸음걸이는 중요합니다.
부처님 일대기를 읽어보신 분이면 다 아시겠지만 부처님 다섯 제자 중의 한 분인 마승 스님의 단정한 걸음걸이를 본 사리불이 감동을 해, 그 스승과 가르침을 물은 인연으로 출가를 하게 된 것은 잘 알려진 일화입니다. 이 스님의 걸음걸이로 인해 부처님의 제자가 크게 늘게 되었고 마침내 큰 교단으로 성장하게 돼 오늘의 불교가 형성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지요.
좋지 않은 걸음걸이에 대해 일타 큰스님께서 제시한 것을 살펴보기로 할까요. 큰스님께서는 총총걸음이나 불안정한 걸음, 발을 질질 끄는 걸음, 뱀이 기어가듯 비뚤비뚤 걷는 걸음, 두리번거리며 걷는 걸음, 머리를 숙여 아래만 보고 걷는 걸음, 길 가장자리로만 걷는 걸음 등을 잘못된 걸음의 예로 들었습니다. 이런 모양의 걸음걸이를 하고 있는 한 정신상태가 올바르게 뿌리내리지 못해 어떤 일이든 이룰 수 없다는 것이지요.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자신감이 있고 당당한 사람들은 걸음걸이도 당당하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가슴을 편 채 씩씩하고 바른 자세로 걷게 된다는 것이지요. 마음이 평화롭고 몸이 건강하니 걸음걸이에도 여유가 생기고 자세가 바르게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불자들은 이런 점을 충분히 감안하여 오로지 모든 감각기관을 잘 수습하여 바깥 인연에 마음을 빼앗김 없이 여유로우면서도 바르고 곧게 해야 합니다. 가슴을 펴고 척추를 곧게 세워서 걷고, 어깨에 힘을 넣지 말며, 아랫배에 은근히 힘이 모이도록 하고, 시선은 약 10미터 전방의 땅을 보도록 하며, 천천히 그리고 깊은 호흡을 하며, 특별히 사색할 일이 없으면 화두를 참구하든지 관세음보살을 부르도록 하면 좋을 것입니다.
- 바르게 앉는 자세
좌선자세는 얼핏 아버지 다리자세(책상다리)로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부처님의 앉은 자세와 같습니다. 가부좌는 그래서 불자들의 앉음새라고도 할 수 있지요. 참선 수행을 한 불자들은 일상 속에서도 습관적으로 가부좌를 하게 됩니다. 앉은 자세만으로도 불자인지 아닌지가 구분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가부좌에는 일정한 원칙이 있습니다. 허리를 지면으로부터 수직이 되도록 쭉 펴야 하고, 시선의 방향이나 고개를 각도 등 여러 원칙이 있지요. 그러나, 불자들도 이 가부좌 자세를 정확하게 취하고 있는 경우가 드뭅니다. 좌선 수행을 많이 한 불자인데도 척추가 구부정하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며 호흡이 거친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자세가 바르지 못하면 화두가 제대로 들리지 않게 되고, 화기(火氣)가 머리로 올라가서 상기병이라는 부작용이 생기기도 합니다. 따라서 올바른 수행을 위해서는 바른 좌선자세부터 배워두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또 이것은 불자로서 지녀야할 앉는 예절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바른 가부좌 자세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지요.
첫째, 방석을 깔고 허리띠를 느슨하게 해야 합니다. 결가부좌를 하되 먼저 오른발을 왼쪽 허벅지 위에 놓은 다음 왼발을 오른쪽 허벅지 위에 놓습니다. 다음으로 오른손을 발 위에 놓고 왼손 바닥을 오른손 바닥 위에 두고 양쪽 엄지손가락의 끝을 서로 맞댑니다.
그리고 난 후에는 상체를 세워 전후좌우로 흔들면서 가장 바르고 안정된 자세를 찾아야 합니다. 이 때, 허리와 척추와 머리의 골절이 직선이 되게 하여 마치 부도의 모양처럼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몸을 곧추세우면 호흡에 곤란을 느낄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 눈의 모양새가 매우 중요한데, 반드시 가늘게 떠서 졸음에 빠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혀는 입천장에 대거 입술과 이는 서로 붙여야 합니다.
- 스님과 상담(면담)을 할 때
불자들이 절에 가는 목적 중에는 기도와 공부 이외에 아주 중요한 것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것은 스님들 뵙고 인생문제나 고민거리 등에 대해 이런 저런 상담을 하는 것이지요.
실제로 많은 스님들은 일과의 상당부분을 신도들과의 대화 및 상담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신도들의 고민과 걱정거리를 일일이 들어주고 적절한 조언과 지도를 해주는 일은 스님들에게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로 자리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스님들이란 본시 인천(人天), 즉 사람과 하늘의 스승이 되고자 세속적 욕망을 버리고 삭발염의한 채 부처님이 되기 위해 정진을 하는 분들이니 신도들을 만나 상담을 하고 바른 길을 알려주는 정도의 일은 일종의 의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아는 사람은 아는 일이겠지만 상담이란 것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남의 고통을 들어주는 자체도 고역인데, 그 해결방안까지 일러주어야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인욕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할 지라도 몇 날 며칠 상담에 매달리다 보면 어느새 짜증이 나고 이 일에서 벗어나고픈 생각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자칫 본의아니게 내담자의 자존심이나 상처를 건드리게 되면 여간 낭패가 아니지요.
수행하랴, 절 운영하랴, 신도 가르치랴 하루가 정신없이 돌아가는 스님들을 찾아 인생사를 논의할 때는 반드시 지켜야할 예절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정말로 판단이 서지 않아서 스님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스님을 찾아야 합니다.
둘째, 스님이 정성껏 상담해준 내용을 신뢰하고 그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셋째, 상담시간은 가능한 짧게 해야 합니다.
넷째, 저녁 늦게나 새벽녘 또는 기도시간 등은 가급적 피해야 하고, 불공이나 정기법회가 예정돼 있어 부산한 있는 날은 상담을 삼가야 합니다.
다섯째, 상담을 하고 난 후 부처님 전에 감사의 표시로 일정한 지나치지 않는 선에서 공양을 올리는 것은 불자로서 기
본적 예절에 해당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 욕심이 생길 때
인간의 근본 욕심인 오욕(五欲)은 재물을 탐하는 재욕, 이성을 밝히는 색욕, 먹는 것에 탐착하는 식욕, 이름 나기를 바라는 명예욕, 자꾸 더 자고 싶은 수면욕을 말합니다. 이런 욕심은 거의 본능과도 같은 것이어서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저절로 행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욕망들의 근원을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가 자신의 마음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나에게 맞기만 하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취하는 마음에서 오욕의 구렁텅이가 생겨난다는 말이지요.
모든 성현들은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면 스스로 행복과 해탈의 기운을 약화시키거나 차단하는 과보를 얻게 된다고 일관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의욕도 정도가 지나치면 탐욕이 되고 이것들이 모여 인생을 병들게 하거나 아예 망치게 하는 것이지요.
모름지기 불자들은 이런 유혹과 욕망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탐욕, 집착으로부터의 해방, 이것이 곧 해탈이 아니겠습니까. 오욕락을 잘 조절하고 다스리는 지혜, 이것은 우리 불자들이 사회와 대인관계에서 지켜야할 기본적인 예절일 것입니다.
재물과 이성은 분명히 인생을 즐겁게 만드는 핵심적 요소입니다. 돈을 모으고 쓰는 재미야말로 어디에다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즐거움이지요. 하기야 돈만 있으면 마음에 드는 이성도, 지위도, 명예도, 좋은 음식도 다 얻을 수 있는 것이 오늘의 사회이니 이를 잘 조절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도 없을 것입니다. 이성 또한 돈 이상으로 사람을 즐겁게 만듭니다. 원하는 이성을 얻었을 땐 마치 천하를 얻은 것처럼 기쁜 것이 아니겠습니까.
재물과 이성, 이것은 참으로 잘 쓰면 좋은 인연을 만들지만 잘못하면 스스로를 일순에 암흑천지로 바뀌어버리겠지요. 지나친 욕심을 절제하고 이를 바르게 승화하는 지혜, 이런 지혜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은 우리 불제자들이 담당해야 할 사회에 대한 예절이자 의무일 것입니다. 욕심이 적으면 차츰 즐거워지고, 만족할 줄 알면 부자가 되는 도리, 이것을 사회에 확산시키는 역할이 불자들에게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 술 마시는 예절
술을 마시게 되는 시절인 연말연시를 맞아 이번 주에는 술을 마시는 예절에 대해 알아보기로 합니다. 술을 마시는데 무슨 예절이 있을 수 있느냐는 의아심을 가질 수도 있겠으나 술을 먹는 것에도 엄연히 원칙과 기준이 있는 것입니다.
흔히 불자들의 기본 오계 중 불음주계, 즉 술 먹지 말라는 계율은 불자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계율로 손꼽힙니다. 특히 요즘처럼 망년회다 송년회다 해서 술자리가 많아지는 시절에는 독실한 신심을 가진 불자일수록 곤혹스러운 것이 사실이지요. 그래서 일각에서는 술 먹는 것 자체가 죄악은 아니지 않느냐고 항변을 하는 이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음주 그 자체가 죄악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술 자체가 허물이 아니듯이 술을 마시는 것이 곧 죄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지요.
다만 술은 과다하게 마실 경우 사람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우리의 근본마음을 무명으로 덮어 지혜를 발현시키지 못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음주 그 자체가 죄라고 하기보다는 취하게 되면 살생이나 투도, 음행, 망어의 죄를 저지르게 되는 속성이 있다는 말이지요.
따라서 술을 마시더라도 즐겨 먹지 말아야 하며, 남에게 함부로 권하지 말아야 합니다. 술을 권할 때에도 나쁜 마음이 아닌 좋은 마음으로 권해야 합니다. 예컨대, 서로 불화가 있어 다투는 사람에게는 화해의 술을 권하고, 피로에 지치고 추위에 떠는 이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술을 주는 것은 죄악이 되지 않는 것이지요.
모름지기 불자라면 술을 마실때에도 남을 살리거나 돕는 정신으로 먹지 않으면 안됩니다. 타락을 위한 술이 아니라 살리고 돕는 술을 마시는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재가불자들의 불음주계는 출가스님들의 불음주계에 비해서 어느 정도 융통성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엄격함의 정도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그 근본정신에는 차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술을 먹되 잘 먹을 줄 아는 지혜, 이것이 불자들이 사회생활과 공동생활을 하면서 지켜야할 원칙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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